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올드 트래포드 (문단 편집) == 역사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맨유ota1.jpg|width=100%]]}}} || || The United Trinity[* 사진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위대한 공격 트리오, 일명 '유나이티드 트리니티'의 세 구성원 [[조지 베스트]], [[데니스 로]], [[바비 찰튼]]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동상이다. 이 동상은 [[올드 트래포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념물이기도 하다.] || 1902년 낡고 부지가 좁은 뱅크 스트리트 구장[* 뉴턴 히스에서 창단한 후 두번째 구장이다. 재미있게도 현재 [[맨체스터 시티]]가 사용하는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에서 동쪽으로 7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위치이다.]을 쓰던 맨유는 당시로서는 거금이었던 60,000 파운드 상당의 비용으로 토지를 구입해 경기장을 건설, 올드 트래포드라는 이름을 붙인다. 개장 당시 총 '''77,000명''' 가량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 올드 트래포드는 1911년, 15년 [[FA컵(잉글랜드)|FA컵]] 결승전을 개최하고 1939년 FA컵 준결승에서 '''76,962'''명의 관중이 들어오는 등[* 현재까지 올드 트래포드의 최다 관중 기록] 거대 스타디움의 위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면서 1941년 나치 독일군의 대규모 폭격으로 인해 메인 스탠드를 비롯한 경기장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이후 약 10년 간 경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맨유는 재건축 기간 동안 당시 [[맨체스터 시티 FC|맨체스터 시티]]의 홈구장이었던 [[메인 로드]](Maine Road)에서 경기를 하기도 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맨유와 맨시티 간의 사이는 좋았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1949년 맨유 측은 전쟁 피해 위원회에서 22,278파운드의 건설 비용을 얻는 등의 노력 끝에 올드 트래포드를 재개장한다. 이후 모든 스탠드에 지붕을 세우고 1958년 최초로 투광 조명 등을 설치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지붕 디자인은 지붕을 떠받칠 기둥이 좌석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경기를 보는데 많은 애로사항을 낳게 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렇게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 있는 축구장이 있다. [[크레이븐 코티지]]와 세계 최초 축구 전용 경기장인 [[구디슨 파크]]가 기둥이 좌석에 있는 경우이다. 1960년대 월드컵을 기점으로 올드 트래포드는 대대적인 개축에 들어간다. 불편했던 지붕 디자인을 바꾸어 기둥을 세우지 않는 지붕 방식인 캔틸레버 스타일의 지붕으로 개축하고,[* 지금 올드 트래포드의 기둥이 없는 지붕을 이 때 처음 세웠다.] 뒤쪽에 더욱 많은 관중을 수용할 수 있게 한다. 더불어 1970년대에는 관중석과 피치 사이에 안전 철망을 설치한 최초의 경기장이 된다. 이후 이런저런 증축을 거쳐 1980년대의 올드 트래포드는 한때 '''58,000석''' 규모의 구장으로 거듭난다. 그러나, 1989년의 리버풀의 [[힐스버러 참사]]로 인해 모든 경기장에 좌석을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1,600명 규모의 입석에 이미 3,000명이 운집한 상태에서 운영 요원들의 실수로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왔다. 게다가 좌석은 철망으로 막혀서 입석은 말 그대로 '''닭장'''이 되어 버렸다. 결국 그 콩나물 시루같이 들어찬 사람들을 견디지 못한 철망이 힘없이 무너졌다.] 모든 입석에 의자가 채워지고 철망도 없애면서 올드 트래포드는 '''44,000석''' 규모로 축소되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OT-1996.jpg|width=100%]]}}} || || 1996년 당시 OT의 모습 ||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지휘 덕분에 1990년대 들어서 트로피를 쌓아가던 맨유는 대대적인 올드 트래포드 개축에 들어간다. 우선 1995~6년 사이 1990만 파운드를 들여 북쪽 스탠드 확장 공사를 진행한 끝에 북쪽 스탠드에만 '''26,000명'''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총 수용 규모는 다시 '''56,000석'''으로 늘어난다. 더불어 확장된 공간에 맨유 박물관을 세우고 반대편 스탠드에는 트로피 전시실, 레스토랑(Red Cafe), 스카이 박스 등을 개설한다. 2000년에는 동쪽 스탠드에도 확장 공사를 완료하면서 '''61,000석'''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OT_2003.jpg|width=100%]]}}} || || 2003년 당시 OT의 모습 || 2003년 68,000석까지 확장하였고, 가장 최근의 공사는 2005년과 2006년 사이의 공사였다. 북쪽 스탠드와 양쪽 스탠드 사이의 공간을 좌석으로 채우는(북동쪽, 북서쪽 스탠드를 새로 세우는 것) 공사를 통해 올드 트래포드는 지금의 '''76,212석'''을 수용[* 현재는 좌석이 일부 감소됨. 위의 좌석수 항목 참조.]하는 대형 구장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니까 박지성이 막 맨유에 입단하여 뛸 적에도 경기장이 한창 공사 중이었던 것이다. 이후 2007년 [[블랙번 로버스]]와의 프리미어 리그 경기에서 '''76,098명'''이 입장하여 좌석제 변경 이후 최다 관중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는 프리미어 리그 최다 관중 기록이기도 하다. 2000년 구 웸블리 스타디움의 철거 및 신구장 건설로 인해 2007년 뉴 웸블리 스타디움이 완공되기까지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구장은 한동안 올드 트래포드로 대체되기도 했다. 그 유명한 [[데이비드 베컴]]의 2001년 그리스전 동점 프리킥골이 나왔던 장소 또한 이 곳이다. 현재 옛날 올드 트래포드의 모습을 간직한 구역은 1993년까지 입장 터널로 쓰였던, 과거 퍼거슨 감독이 껌을 씹으면서 경기를 지켜보는 홈팀/원정팀 더그아웃이 있는 남쪽 스탠드 뿐이다. 현재는 남서쪽 구석에 입장 터널이 마련되어 선수들이 이곳을 통해 입장하고 있다. 2018년 여름, 홈팀측 드레싱룸의 시설을 최신식으로 업그레이드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어웨이팀측 드레싱룸의 면적을 이전의 절반으로 줄여놨다는 모양. 이전에도 홈팀측 시설이 좀 더 좋기는 했지만 허용 가능한 수준이었던 반면, 이번 공사로 홈팀과 어웨이팀측의 시설 수준이며 면적이 크게 불공평하게 바뀌었다고 한다.[* 사실 대부분의 구장이 홈팀에게 유리하게끔 만들어져있긴 하다. 홈팀 드레싱룸의 모습과는 달리 어웨이팀 드레싱룸의 모습을 인터넷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도 구단들이 공개를 꺼리기 때문.] 또한 2017년 맨체스터 더비에서 무리뉴 감독과 맨시티 선수들이 터널에서 충돌한 사건의 여파인지, 어웨이팀이 메인 터널로 진입하는 작은 통로가 따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점 또한 어웨이팀에 다소 불리해진 부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